오래전에 어떤 신문에서 신입사원 면접보는 면접관의 질문중에
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출근을 할 것이냐는 물음이 인상깊게 내게도 물어졌었다.
그 때 나의 답은 '상황 따라서' 라고 생각했었는데.
아주머니 생각들은 어떻게 출근할 수 있느냐고 불효막심한 듯한, 전혀 용납이 안되는 상황설정이다.
오늘 아침 간간히 신호 대기하며 차에서 읽은 좋은생각중에 정말 따뜻해지는 내용.
박경철이라는 시골 의사의 전공수련때의 이야기.
......내가 어렵사리 2년차를 끝내고 막 3년차가 되었을 무렵이었다. 회진을 준비하고 있는데 의국에서 연락이 왔다.
4년차인 김 선생님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. 마침 김 선생님은 수술실에서 과장 선생님이 집도하시는 수술을 돕고
있었는데, 얼른 수술실로 올라가서 김 선생님을 댁으로 가시게 하고 대신 들어가라는 것이었다.
먼저 수술복을 갈아입고, 수술실 밖에서 소독약으로 손과 팔을 씻은 다음 수술실로 들어섰다.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다음
수술에 열중하고 있는 수술 팀을 향해 말했다.
"김 선생님 부친께서 방금 전에 갑자기 돌아가셨답니다."
그런데 과장 선생님과 김 선생님은 미동도 하지 않고 수술만 계속하는 것이었다.
나는 수술복을 입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. 내 말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도 두 분은
내게 일언반구 없으셨다.
당시 수술실에서는 복부대동맥에 동맥류가 생긴 환자를 수술하고 있었다. 혈관을 집는 혈관클램프가 대동맥을 가로질러
위쪽의 대동맥을 물고 있고, 그 아래쪽으로 잘라낸 대동맥 자리에는 고어텍스로 만든 인조혈관이 연결될 참이었다.
시간이 지체되면 환자의 척수에 피가 공급되지 않아 하반신 마비가 올 가능성이 높은 수술이었다.
그래서 나는 신속하게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발판 위에 올라서서 수술대를 내려다보며 수술 전개과정을 머리에 그렸다.
하지만 시간이 10분, 20분 흐르도록 두 분은 계속 수술에만 열중했다. 수술실은 "쨈!" , "컷" , "타이"와 같은 수술지시만
간헐적으로 들릴 뿐, 마치 심해처럼 고요했다. 마취과 의사도, 간호사도, 나도 아무도 감히 이 정적을 깰 용기가 없었다.
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대동맥이 새로 이어졌다. 위쪽 대동맥을 꽉 물고 있던 혈관클램프가 "클램프 오프!" 라는 과장
선생님의 나지막한 지시에 의해 풀렸다.
만약 이때 피가 새거나, 연결부위가 터지면 그 자리에서 사망이었다. 다행히 연결이 잘되어 환자의 아래쪽 다리가 따뜻해지고
피가 돌았다. 모두가 안도했다. 그때 갑자기 과장 선생님이 맞은편에서 수술을 보조하던 김 선생님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지르셨다.
"뭐 하나? 빨리 안 가고!"
그러자 김 선생님은 가벼운 목례와 함께 "다녀오겠습니다" 딱 한 마디만 하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.
수술 장갑을 끼고 대기 중이던 내 눈에 김 선생님의 눈이 온통 벌겋게 물드는 것이, 그리고 과장 선생님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
동시에 들어왔다. 그날 오후 회진에는 과장 선생님이 참석하지 않으셨다. 수술을 마치고 바로 김 선생님네 상가로 내려가신 것이다.
나는 그때 그 살벌한 수술실에서 남자들의 믿음을, 외과의사의 소명을,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깊은 사랑을 보았다.
그리고 세월이 흘러 오늘 존경하는 과장 선생님의 부고를 들은 슬픈 아침에 이 글을 쓰면서 그때 그 뜨거운 눈물들을 다시 한 번
기억하고자 한다.
선생님 깊이 영면하소서..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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